@Kr-wk6bf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야말로 엄청 대단한 것이고 제일 존경하는 위인이기도 하지만, 이와 더불어 진주성과 김시민 장군에 대한 내용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영-p9s

김시민 장군도 이순신 장군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종전 후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으셨다.
전라도 바다에선 이순신,
경상도 내륙에선 김시민 장군.

@김멍무-x4i

그래서 저 두꺼비 요괴를 타고 다니는 김시민장군의 아들이 나루토의 지라이야 케릭터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ohtuck4259

김시민장군님의 후임으로 진주성을 지키시다가 2차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하신 황진 장군님도 정말 엄청난 장군님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임진왜란의 2등~3등 공신으로 생각하고 있구요. 2차진주성전투 일본군 라인업 보면 정말 어마어마 합니다. 어찌보면 패배가 당연한 전투에서 정말 멋지게 싸우다가 전사하신 황진장군님도 다들 한번씩 기억해주세요

@거북이-x7j

2차 진주성전투가 사실상 도요토미 야욕 종결된 시점입니다. 
정유재란 시작하고 경상남도 해안가에서부터 다시 북진시작(태초마을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인데 첫빠따로 저번 1차 진주성전투 복수한다고 9만명 총집결, 전국시대 유명한 장수들 이때 다 등장함. 제일 인기 많은 독안룡 다테마사무네도 진주성전투 참가함.
이때 진주성 수비대장은 황진 장군인데 절대적 열세에서 잘 싸움. 제일 잘 싸운 장군 중 한명인데 패전했다는 이유로 잘 안알려짐ㅠ
결국 함락당하긴 하지만 일본군 9만명 중에 3만명 사망 3만명 부상으로 병력의 2/3이 전투불능되면서 여기서 전쟁 끝난거나 다름없게됨. 그당시에 부상당하면 평생 불구로 사는거임.

@fcknight77

2차 진주성전투에서 일본이 9만병력으로 당시 일본장군 어벤져스를 다모아 쳐들어와서 3천병력으로 밤낮으로 약8일간 전투를 하다가 황진 장군이 전사함. 1차 진주성 전투에 장군은 김시민장군이고 2차 전투에는 황진 장군이었음. 김시민 장군도 훌륭하지만 황진 장군의 업적도 알아야함.

@리디야산드라

진주성 참 잘 만든성. 박물관으로 관리도 여태 잘하면서도 여태 잘 알리고있고. 총통과 역서와 영상으로 널리 국내와 국외(유투브로) 알리고 있는 진주박물관 관계자에 감사의 말씀을...

@닉네임님

중국에 경극 에서는 연개 소문을 절대 죽지 안는 요괴 장군으로 묘사을 함

@아무이름-v4x

저 당시에 나라를 자키려고 목숨까지 바치면서 싸우셨으니 그 용맹함을 말로 어찌 헤아리오.....

@메리크리스마스-q1u

나였다면 저 시대에 저분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 멍청한 왕과 썩어빠진 정계 때문에 공을 세워도 눈치를 봐야 했을텐데...정말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 너무 대단하다.

@sunnyyun4092

2차전 9만 병력으로 가서 이겼던 전투도 사실 일본이 이겨도 이긴게 아님 왜냐면 그 9만도 거의 초토화 돼서 원래 목적인 이순신을 육로로 치러 가는 계획을 시행하지도 못하게됨. 그 2차전 전투는 더 대단했는데 그때 장군이 황진 장군임. 2차전도 위대한 전투였어요. 그때 병력은 1차전 3천보다 더 적은 병력이었고 같이 지켜주던 의병들 조차도 9만의 병력을 보고 우리는 후방에서 게릴라 전을 준비하겠다 라고 말하며 진주성을 떠나버림. 근데도 황진 장군의 남은 병력이 9만의 일본군을 상대하면서 거의 초토화 시킨 전투였음. 일본의 목적은 육로로 이순신을 치러 가는게 목적이었음 근데 결국 2차전도 9만의 병력 대부분을 소실해서 이순신을 치지 못해서 우리가 임진왜란을 겨우 이김. 
심지어 진주에서 왜군이 2차전 이겨놓고 왜군 적장이 논개한테 디져버림 
진주는 김시민도 김시민인데 논개에 대해서 엄청 이야기 많이함

@chef.4726

충무공 김시민 장군님 감사합니다.

@agm1144

한산도 대첩때 보다 진주 대첩때 히데요시가 더 긁혔다고 함.
흥미로운건 정작 그러면서 조선군 장수 이름은 하나도 몰랐음. 이순신도 그냥 조선 수군 장수로만 기억되었고 김시민도 이름은 모르고 진주 목사라고 '모쿠사(목사)"라고 했음.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을 베고는 서예원을 김시민인줄 알고 조아라 했다고도 함.

@zhaoyunzulong

임진왜란 전체 중에 가장 치열하고 눈물난 전투는 2차 진주성 전투... 이때는 비록 일본이 이기긴 했으나 피해가 너무 막심해서 바로 남원쪽으로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황진 장군은 당시 충청도 병마사, 지금의 도지사라서 굳이 참전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진주성까지 싸우러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저격으로 돌아가심.... 
이래서 역사를 아는 분들은 임진왜란 3 대장으로 이순신, 황진, 정문부 장군을 꼽습니다.

@jangwonhan7903

그 아들이라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설화가 지라이야....진주가보니 충무공동도 있고, 김시민교도 있어서 처음 알았었음

@baseboy5152

그만큼 무서워했기때문에 소설이 쓰여진 거죠.
모쿠소.
모쿠소가 한자로 목사.
진주목사가 1차 진주성 전투의 지휘관이었죠.

@kvkim7041

진주성 전투는 1차, 2차 모두 조선군의 화포에 왜군들이 열심히 반자이돌격하다가 망한 전투이고, 2차는 왜군이 하도 많이 들이받아서 겨우 이긴 전투입니다.(훗날 일본의 에도시대를 여는 세키가하라때 투입된 서군 병력보다 더 많았던 병력)1차때는 김시민 장군이 지휘했고 2차때는 실질적으로 황진 장군이 지휘했습니다.

2차 전투 때 조차도 조선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황진장군이 전사하면서 지휘체계가 붕괴되고, 왜군이 열심히 성벽을 무너트리려고 땅굴을 파는 등 많은 노력을 했던 도중 비가내려 결국 성벽이 무너져서 패했습니다. 그러나 왜군역시 피해가 너무 커서 전과확대에 실패했습니다.

김시민 장군, 황진 장군 두분 다 전사한 이유가 왜군이 얼마나 죽었는지 성벽위에서 확인하던중 왜군 시체더미에 생존해있던 왜병이 조총으로 저격한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왜군이 죽었는지 짐작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꿀팁저장소카페

와 진짜 지라이야 모티브였다고?ㅋㅋㅋㅋㅋ

@shipduck111

비슷한 예로 중국이 무서워하는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있죠

@toenjoytherailroad

진주사람으로써 정말 뽕찹니다